반죽이 들려주는 하루의 온도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9일 오전 11 12 16

빵을 만들 때마다 느낀다. 반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손끝의 온도, 마음의 여유, 밀가루의 숨결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반죽을 할 때면 오늘 내 하루가 어땠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조급했는지, 집중했는지, 혹은 마음이 흔들렸는지. 이상하게도 반죽의 질감이 내 감정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같다.

처음 베이킹을 시작했을 땐 단지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만드는 시간’ 그 자체가 더 중요해졌다. 손으로 밀가루를 섞고, 반죽이 천천히 살아나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마음을 정리해주는 시간이었다.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차분히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는 그 여유가, 요즘 내 일상의 중심이 되었다.

가끔은 반죽이 잘 부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오븐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빵을 더 깊은 맛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베이킹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과정은 늘 다르고, 결과는 언제나 예상 밖이다.

요즘 나는 빵을 ‘굽는다’기보다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반죽의 질감, 굽는 냄새, 오븐에서 퍼지는 소리까지 모두 기억하고 싶다. 그 시간들이 모여 내 하루를 따뜻하게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반죽을 치대며 다짐한다. 내일의 빵이 오늘보다 조금 더 부드럽기를, 그리고 그 속에 나의 진심이 스며들기를.

굽는다는 건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기다림의 미학이자, 나 자신을 다독이는 일이다. 손끝으로 마음을 반죽하고, 오븐의 열로 생각을 구워내며, 그렇게 매일의 조각들이 빵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굽는다. 내 하루의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를 바라며.

전유진 제빵사